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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건축의 거장 독일 건축가 '미스 반데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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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건축의 거장 독일 건축가 '미스 반데로에'는

독일 출신의 20세기 대표 건축가이자,

전통적인 고전주의 미학과 근대 산업이 제공하는 소재를

교묘하게 통합하였으며 특히 유리와 철강에 관심을 보였으며 대표작으로 바르셀로나

국제박람회의 독일관과 시카고의 레이크쇼어드라이브의 아파트 등이 있다.



미스의 아버지는 석공이었고, 시골의 작업장에서 어릴 때부터 돌을 만졌다.

베를린으로 이주한 뒤 근대 건축의 초창기 거장인 페터 베렌스의 스튜디오에서 건축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정규 교육이나 학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재능을 인정받고 곧 독립적인 건축가로 나서게 된다.


이때, 촌놈이었다가 새로운 디자인 이론과 독일의 문화를 접하면서 문화적 엘리트로 변모하면서

본명인 '마리아 루트비히 미하엘 미스'에서 좀더 귀족적인 어머니의 성인 '반데어로에'를 붙여

'미스 반데어로에'로 개명한다.


초기의 건축은 전통적인 독일식 양식으로 설계한 고급 주택이 주를 이루었다.



전통적인 주택들을 설계하면서도 새로운 디자인 이론과 전위적인 사상을 계속 접하고 있었지만

미스를 극적으로 바꾼 것은 제1차 세계 대전이었다.

이 전쟁으로 유럽의 제국적 리더십이 가진 낡은 질서가 극적으로 실패하면서

문화계에서는 진보적인 이론들이 훨씬 신빙성을 얻게 되었고,

고전적이며 복고적인 건축양식은 불명예스러운 과거를 상징하게 되었다.


미스는 고전적인 양식들을 버리면서 단순히 새로운 이론과 형태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강철과 유리라는 새로운 재료, 공법을 폭넓게 연구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국제 건축계에 신의 한 수를 던진다.



1920년대에 이런 비주얼을 목격한 당시 건축계는 그야말로 충공깽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삼각형 대지 위에 철골 구조만 우뚝 서 있는 듯한 투명함,

그러면서도 주변을 반사하며 새로운 물질감을 나타내는 유리면

기존의 육중한 건물과 비교하면 무게가 없는 듯한 이 계획안은 지어지지 못했지만

미스의 이름은 순식간에 유명해지게 된다.


이러한 무게가 없고 투명한 공간은 당시의 새로운 사상과 철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문화적 진화라는 것은 매일 사용하는 물건들로부터 무의미한

장식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순수한 공간 자체를 창조하려 했다.

그리고 1929년 바르셀로나 국제 박람회에서 지어진 임시 건물인

독일관에서 미스가 제시한 새로운 공간이 실체로 구현되었다.



1929년 이후 대공황으로 일감이 줄어들었다.

친구이자 경쟁자인 발터 그로피우스의 요청으로 1930년 바우하우스의 교장을 맡았다.

미스는 나치의 집권 후 정권의 설계 수주를 받으려 노력했지만

그의 양식이 '독일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당시의 '독일적'이라는 것은 알베르트 슈페어로 대표된다.


다시 말해 나치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현대건축보다 민족정신을 대변하는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건축을 선호했다.

바우하우스의 진보적인 학풍을 혐오한 나치당의

정치적 압박이 계속되자 1933년 학교는 문을 닫는다.


1937년 마지못해 조국을 떠난 그를 받아준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에 도착한 그는 엄청난 환대를 받았는데, 국제주의 양식의 열렬한 후원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시카고의 아머 공과 대학(IIT의 전신)의 건축학부장을 맡으면서

캠퍼스의 새 건물들을 자기가 짓는 것을 조건으로 건 것은 무리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1944년 미스는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독일 국적을 버렸다.



건축을 형이상학과 철학, 시詩의 위치로 올려 놓았다고 여겨지며,

르 코르뷔지에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함께 근대 건축 3인방으로 불린다.

그리고 철과 유리라는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을 정립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


그러나 영향력에 비례해서 비난도 많이 받는다.

less is more라는 그의 철학과 건축은 세상을 끔찍하게 지루하게 만들었고,

전 세계를 똑같이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판스워스 하우스의 사례와 같이, 건축가의 이상을 위해 실제

거주자의 삶을 희생시키는 엘리트주의적 건축가의 모습도 전 세계에 퍼뜨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리궁전의 창시자인 것으로도 비난받는데, 사실 이는 정부나 자본 등 무분별하게 유리궁전을 짓는 주체가 문제이지 유리궁전을 창시한 미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에는 애매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오늘날 현대건축은 "모더니즘은 실질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음"을 선언했음에도

현대 건축의 공간은 점점 더 미스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다.

자본과 상업의 영향력을 지대하게 받는 현대 사회는

미스의 '순수하고 균질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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